
▲ 권오준 포스코 회장.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중도에 낙마하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된 탓이다.
권오준 회장은 연임에 성공한 뒤 이번 임기의 목표로 후계자 육성시스템의 정착을 내세우고 오인환 사장과 역할을 나눠 신사업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런 흑역사를 끊겠다는 선전포고로 여겨진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권 회장은 요즘 들어 ‘스마트’를 강조하며 신사업을 키우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9년까지 모든 사업장의 스마트공장화를 마쳐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포스코 이노베이션 페스티벌에서도 권 회장은 “창의적 생각과 스마트 기술로 100년 기업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초에는 국내 최초로 탄산리튬 상업생산을 시작하는 등 전기차와 스마트그리드 시대에 대비해 에너지소재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권 회장이 신사업에 전념하면서 오인환 사장과 투트랙 체제 안착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영자로서 권 회장은 첫 임기에서 합격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3년 동안 포스코는 솔루션마케팅 연계 판매량이 3배 늘었으며 순차입금을 7조1천억 원을 줄였고 부채비율도 74%로 낮췄다.
두번째 임기에서 권 회장이 신사업을 통해 포스코의 앞길을 닦겠다는 목표도 순조롭게 진행한다면 그룰 둘러싼 교체설은 명분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후계자 육성 역시 인사외풍에 흔들렸던 과거의 포스코와 결별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다.
권 회장은 올해 초 연임에 성공하자마자 오인환 사장에게 COO(최고운영책임자)를 겸직하도록 하면서 후계자 양성을 본격화했다. 오 사장에게 철강사업을 넘기고 권 회장은 미래 성장사업과 비철강사업을 담당하는 구조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경제사절단에 권 회장이 아닌 오인환 사장이 동행한 것 역시 역할분담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코 관계자는 “중국 법인장 출신인 데다 철강사업을 맡고 있는 오 사장이 가는 게 맞다고 여겨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청와대 눈치보기의 연장선이라는 뒷말도 있다. 사절단 신청서에 권 회장을 내세웠다가 또 탈락할까봐 오 사장의 이름을 대신 쓴 게 아니냐는 것이다. 권 회장은 앞서 미국과 인도네시아 사절단에서도 제외됐다.
권 회장 입장으로서는 지긋지긋한 일일 수 있다. 그는 최근 중도하차설과 관련한 질문에 “안 듣고 산다”고 못을 박기도 했다.
포스코 수장들이 임기를 마치기 전 교체설에 시달리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역사상 연임에 성공하지 못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지만 두번째 임기를 채운 이도 없다.
포스코 수장의 수난사는 창업자인 박태준 명예회장 때부터 시작됐다. 박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 기간산업으로 철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아 포스코의 전신인 국영기업 포항제철을 세웠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적 갈등 끝에 물러난 이후 황경로, 정명식, 김만제, 유상부, 이구택, 정준양 회장 등 후임자들이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이 가운데 정명식, 이구태 회장을 빼곤 줄줄이 기소를 면치 못하고 형사처벌을 받았다.
정권의 도움을 받아 회장에 오른 뒤 ‘보은’을 하는 구조적 비리가 반복된 탓이다. 2000년 포스코가 민영화된 뒤에도 여전히 정권의 입김을 피하기 어려웠다.
권 회장이 취임할 당시 정치색 덜한 엔지니어 출신인 만큼 과거 경영진과 다를 것이란 기대를 받았지만 그 역시 선임 과정에 최순실씨가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비극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연임에 성공하면서 무탈히 넘어가는 듯 했으나 한 시민단체가 26일 권 회장과 최씨를 상대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다시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사실이 아닌 주장이라 난감하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2014년 “위대한 포스코(POSCO the Great)를 재건하겠다”고 취임 일성을 던졌다. 그는 올해 연임에 도전하면서는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절반의 성공을 거뒀고 남은 과제를 완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회장이 외압의 악순환을 잘라내면 나머지 절반의 성공을 채우게 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