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번호이동하면 현금 100만 원" 해킹사고가 '페이백' 전쟁 촉발, SK텔레콤 가입자 이탈 '속수무책'

▲ SK텔레콤의 해킹 사고 이후 이른바 '휴대폰 성지'라 불리는 서울 강변과 신도림 테크노마트 휴대전화 집단판매 상가를 중심으로 통신사들의 지원금과 현금 페이백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SK텔레콤의 대규모 해킹 사고 이후 가입자 이탈이 본격화하면서, 이동통신 3사의 번호이동 유치 경쟁이 ‘현금 페이백 전쟁’ 수준으로 격화하고 있다. 

최신 단말기는 이미 공짜폰이 됐고, 번호이동에 초고속인터넷과 TV까지 결합하면 100만 원이 넘는 현금 ‘페이백’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7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와 SK텔레콤의 번호이동 위약금 면제 수용 여부에 따라 통신 3사 간 지원금 경쟁과 가입자 쟁탈전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지난 2일 이른바 ‘휴대폰 성지(단통법을 피해 휴대전화 공시지원금 이상 보조금을 지급하는 매장을 뜻하는 은어)’로 불리는 서울 강변과 신도림 테크노마트에 위치한 휴대폰 대리점을 방문해 현장 분위기와 지원금 경쟁 상황을 살펴봤다.

신도림 테크노마트와 강변 테크노마트는 수도권을 대표하는 휴대전화 집단 판매 상가로, 매월 1만 대 이상의 휴대전화가 개통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단통법 폐지를 앞둔 지난 3월과 SK텔레콤 해킹 사고 직후인 5월에 비해 테크노마트 휴대전화 대리점 곳곳마다 새로 개통을 알아보는 소비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평일 오후임에도 상담을 받는 소비자는 평소보다 2~3배 가량 늘어난 모습이었다. 

특히 해킹 사고 이후 ‘탈 SK텔레콤’ 분위기가 번지면서 다른 통신사로 번호 이동하는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탓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갤럭시S25 구매와 초고속인터넷 결합이라는 동일한 조건으로 대리점 여러 곳을 방문해본 결과, 첫 번째 매장에서 제시한 현금 페이백은 40만 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매장에서는 65만 원까지 페이백이 올라갔다. 일부 매장에서는 “IPTV까지 함께 결합하면 100만 원 넘게 돌려드릴 수 있다”는 제안까지 나왔다.

휴대전화 구매 시세를 공유하는 모 네이버 카페의 온라인 시세표에 따르면 출고가 115만5천 원인 갤럭시S25(256GB) 모델을 LG유플러스 번호이동 조건으로 구매할 경우, 단말기 가격은 ‘공짜’로 책정되고 현금 페이백은 최대 38만 원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페이백 금액은 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LG유플러스 공식 홈페이지에 나온 공시 지원금을 적용하면 소비자는 갤럭시S25(256GB) 모델을 구매하기 위해 46만5천 원을 부담해야 했다. 하지만 비공식 유통채널에선 단말기는 공짜에 거꾸로 페이백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현장]"번호이동하면 현금 100만 원" 해킹사고가 '페이백' 전쟁 촉발, SK텔레콤 가입자 이탈 '속수무책'

▲ 지난 2일 오후 서울 신도림과 강변 테크노마트 휴대전화 상가에는 휴대전화 개통을 상담하는 소비자들로 붐볐다. 사진은 신도림 테크노마트 휴대전화 상가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현장에서는 이미 단통법이 사실상 폐지된 것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강변 테크노마트에서 대리점을 운영하는 A씨는 “단통법이 폐지되면 더 싸지는 게 아니라, 지금 이미 단통법이 폐지된 가격으로 나가는 거다”라고 말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휴대전화를 싸게 살 수 있는 정보가 없으면 손해를 보기 쉬웠던 단통법 시행 이전의 시장 경쟁 상황이 다시 재현되는 분위기였다.

방송통신위원회도 5월 말 강변과 신도림 일대 대리점을 직접 점검하며, 과열된 시장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해보였다. 

현장에선 이동통신 3사 가운데 LG유플러스가 가장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고 있었다. 

강변 테크노마트 대리점주 B씨는 “LG유플러스가 원래부터 지원금을 제일 많이 썼다”며 “SK텔레콤은 위약금 지원을 안 하는 것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 지원금을 풀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후발 주자인 LG유플러스는 이번 SK텔레콤 해킹 사고를 기회로 삼아 가입자 확보를 위한 승부수를 던진 모습이다. 방문한 대리점마다 “휴대폰은 무조건 LG가 싸다”며 번호이동을 권유했다.

반면 KT는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보였다. 

시장 점유율 2위의 안정적 위치를 바탕으로 SK텔레콤에서 이탈하는 소비자를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데 집중하며 적극적 마케팅보다는 수요 유입에 기대는 전략을 구사하는 듯 했다.

신도림 테크노마트 대리점주 C씨는 “SK텔레콤에서 이동하는 사람들은 LG유플러스보다 KT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선호도 2위인 KT는 돈을 안 쓰고도 어부지리로 고객들을 받는 격”이라고 말했다.

해킹 사고 직격탄을 맞은 SK텔레콤은 신규 가입자 유치가 사실상 막힌 상황에서 기존 가입자 방어에 주력하고 있었다. 

대리점주 B씨는 “SK텔레콤이 원칙적으로 신규 가입용 유심을 배정하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e심을 개통하도록 권유한다”며 “e심을 개통하는 조건으로 15만원의 지원금을 더 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기기 변경 가입자를 대상으로 공시지원금을 상향 조정하며 탈퇴 방지에 나섰으나, KT와 LG유플러스의 맞불 전략으로 효과는 제한적인 상황이었다.

대리점주 C씨는 “30년 넘게 SK텔레콤을 이용해온 가입자들도 이동한 경우가 있다”며 “단골 고객 중에는 SK텔레콤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며, 요금 혜택이 있음에도 갈아타겠다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오는 7월 단통법 폐지와 함께 지원금 경쟁이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SK텔레콤이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번호이동 위약금 면제를 수용할 경우 통신 3사 간 가입자 쟁탈전은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C씨는 “통신사가 해킹 사고로 인해 리베이트를 100만 원 이상 지급하기 시작한 것은 25년 간 이 일을 해오면서 단통법 시행 직전인 2014년 이후 처음 보는 일”이라며 “단통법이 폐지되면 한 달 후에는 통신 3사가 서로 지원금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리·김주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