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10년 전에는 소비자가 어떤 콘텐츠를 인지하는데 20.53초가 걸렸어요. 지금은 2초입니다. 2초 안에 '이걸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려요.”
23일 서울 성수동에서 만난 치·의과 학술 마케팅 회사 이어혜다의 이현승 대표는 헬스케어 정보가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현승 대표는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알고 싶지 않아 외면하는 시대”라며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지 않으면 건강 콘텐츠는 외면받는다”고 말했다.
검색만 하면 병명까지 쉽게 알 수 있는 시대.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소비자는 선택적으로 눈길을 준다. 이 대표는 ‘의료 정보를 외면하려는 마음’을 움직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대표는 사람들이 가장 열광하는 콘텐츠로 ‘1만 원 미만 솔루션’을 꼽았다.
“소비자들에게는 1만 원 이하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환영받아요. 반대로 가장 외면받는 것은 생활습관을 바꾸라는 모호한 조언이죠. 의사가 영양제를 사라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만 술 줄이고 운동하라는 말은 아무도 안 봐요.”
건강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는 유튜브 채널 덴탈피디아 채널을 운영하고, 얼마 전 구강 전문 매체 ‘이인치’를 창간했다. 치과와 의과 모두 다루지만, 마케팅은 고령화 흐름 속에서 치과 시장을 ‘블루오션’으로 보고 힘을 싣고 있다.
“치아는 재생되지 않고, 입은 면역과 직결되는 중요한 기관이지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치과 관련 정보를 널리 알리는 일이 의미 있고 동시에 사업성도 충분하다고 판단했어요.”
▲ 이현승 이어혜다 대표는 치과와 의과의 접점에 관심이 많다. <비즈니스포스트> |
그의 관심은 치과와 의과의 접점으로도 확장된다. 고혈압 약의 부작용으로 잇몸이 붓는 증상인 ‘치은 비대’가 있지만 의과 진료 가이드라인에는 구강 관련 부작용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골다공증 주사를 맞으면 임플란트 주변에 골괴사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는 임플란트 시술 자체와는 무관하다. 그는 이런 진료 지침의 빈틈을 메우는 콘텐츠 제작에 힘쓰고 있다.
대표로서는 2년 남짓이지만 커리어케어, 퓨로바이오로직스, 메디케이트 등 여러 회사를 옮겨다니며 임원 경력은 10년 째다. 이 대표는 임원의 본질을 단순하게 정의했다.
“임원은 성과를 따와서 조직 구성원들과 나눠야 해요. 내 공과를 따지는 순간 임원 자격은 끝이에요. 다만 성과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조직 내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대표가 모든 성과를 올리고 분배하면 공평하다는 생각이 있어요. 불만이 있어도 쉽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거든요.”
‘여성’ 임원으로서 힘들었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군대를 갔다 온 남자와 갔다 오지 않은 남자들 속에서 그는 ‘제3의 성’으로 살았다고 회고한다. 도대체 ‘누구 편이냐’는 질문도 끊임없이 받았다.
그는 “돌아보니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힘든 순간이 있었다”며 “운 좋게 실적도 냈고, 의료·제약 업계는 여성 임원도 많았음에도 쉽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을 실감한다고 했다. JTBC 드라마 ‘에스콰이어’에 여성 회장이 등장하는 걸 보면서, 이제는 사회적으로도 여성들이 당연히 일해야 한다는 합의가 생기고 있구나하고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임신·출산·육아 영역에서는 제도적 보완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업무 특성상 주말 근무를 피할 수가 없어요. 학회는 대부분 주말에 열리고, 평일에도 병원 문이 닫힌 밤 9시~10시에 일을 시작하는 일이 많아요. 기혼 유자녀 여성 직원들의 임무는 동료 직원들이 대신하는 경우가 흔해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요.”
그는 ‘시간을 빼앗긴다’이라는 측면에서 군대 제도를 예로 들었다. 군 복무 중인 2005년생 아들을 둔 엄마로서, 최근 군 복무 환경이 크게 개선된 것을 체감했다고 한다.
“최근 군대에서 군 학점 인정과, 각종 자격증 등 교육 기회 제공, 장학금 지원, 휴가 획득 기회 확대 등으로 ‘시간을 강탈했다’는 사회적 미안함을 제도로 보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출산의 고통을 감내한 여성들에게는 이런 보상이 거의 없어요.”
이어 “아이가 있는 직장 여성들의 출근 시간을 1시간 늦춰주자는 방안에 대해 미혼 여성 직원들이 가장 강하게 반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동 육아는 집에서만이 아니라 회사에서도 함께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여성도 공평한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그동안은 제3의 성으로 살아왔지만, 앞으로 임신·출산·육아 등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