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 레시피] '리틀 포레스트' '굿바이' '바베트의 만찬', 지친 삶을 위로해 주는 음식

▲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에게 고향의 음식은 소박하지만 깊은 위로가 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비즈니스포스트] 음식을 소재로 한 다양한 영화들이 있다.

특이하게도 주인공이 쥐로 설정된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브래드 버드, 2007)에는 프랑스 전통요리들이 등장하고, 리안 감독의 초기 대표작 <음식남녀>(1995)는 가족의 갈등과 화합을 대만 전통 음식을 매개로 풀어간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요리 경연대회를 소재로 다룬 <식객>(전윤수, 2007) 같은 영화도 있다.  

고단한 도시의 삶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고향일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임순례, 2018), <굿바이>(타키타 요지로, 2008)는 낙향한 주인공이 스스로를 추스르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아하는 영화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음식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심이 된다.

이 두 작품에서 음식이 주인공을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한다면 <바베트의 만찬>(가브리엘 엑셀, 1996)에서 음식은 삶의 가치와 의미를 뒤흔드는 강렬한 장치가 된다. 

도시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김태리)은 “배가 고파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편의점 알바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혜원은 식어 빠진 편의점 도시락을 먹다 문득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싶다는 걸 깨닫는다.

고향집에 돌아와 난로에 불을 붙이고 마루에 들어 누운 혜원은 배고픔을 느낀다. 텅 빈 고향집은 예전과 다름없지만 먹을 것이라고 약간의 쌀과 밀가루뿐이다.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는 읍내는 멀고 하필 계절도 겨울이라 텃밭에서 구할 식재료도 마땅치 않다. 

혜원은 눈 덮인 배추밭에서 꽁꽁 얼은 배추 한 포기를 뽑아 배춧국을 끓인다. 하얀 쌀밥과 배춧국으로 첫 번째 귀향 음식을 차린 것이다. 남아 있는 밀가루를 정성껏 반죽해서 만든 뜨끈한 수제비와 밀가루 반죽을 입힌 배추전이 두 번째 귀향 음식이다.

혜원이 만들어 먹는 제철음식은 보기만 해도 정겹고 따뜻하다.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장만하는 모습이 하루하루 잔치를 준비하는 것만 같아 보인다.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비교하면 닮은 듯 다른 음식 목록이 흥미롭다.   

<굿바이>의 주인공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도쿄 생활을 접고 고향 야마가타로 돌아온다. 

오케스트라 첼리스트였던 그는 재정난으로 악단이 해체되자 미련 없이 낙향을 결정한다.

신혼인 아내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다이고는 구인 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가지만 뜻밖에도 그곳은 장례업체였다.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에 당황한 다이고에게 사장은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그를 붙든다. 생계를 위해 잠시만 일을 해보기로 한 다이고는 아내에게는 여행사라고 거짓말을 한다. 

다이고가 취직한 업체는 시신을 염하고 관에 넣는 일을 하는 곳이다. 다이고가 마주하는 시신은 소년, 소녀부터 할머니까지 나이도 사망 원인도 다른 사연을 안고 있다.

고독사해 부패한 노인의 시신 수습을 하면서 구역질을 참지 못했던 다이고는 점차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와 보람을 깨닫게 되는데 그의 태도가 변하는 국면마다 음식이 등장한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만큼 음식의 비중이 큰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의 심경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처음으로 시신을 수습하고 온 날 아내가 차려 준 닭 육회는 다이고가 직면한 시련을 적나라하게 전시해 놓은 셈이다. 이날 다이고는 음식에 손도 못 대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의 일에 대한 마음의 문이 열릴 즈음 그는 유가족이 건네 준 곶감을 맛있게 먹는다.

다이고가 일에 적응할 무렵 또 다른 시험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장례지도사라는 다이고의 일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동네친구의 태도는 참을 수 있었지만 다이고의 일을 알아버린 아내가 가출해 버린 것이다.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찾아온 다이고에게 사장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권한다. 다이고의 마음을 다 알고 있는 사장은 담담하게 화로에 복어 정소를 굽는다.

“미안스럽게도 맛있다”는 말을 하며 복어 정소를 먹는 사장은 다이고에게도 한 점을 건넨다. 생소한 음식을 껄끄럽게 바라보던 다이고는 막상 입에 넣자 표정이 바뀐다. “생물은 다른 생물을 먹고 살아 간다.”는 사장의 말에 다이고는 흠칫 놀란다. 자신이 음식에 대해 편견을 가졌듯 직업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도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바베트의 만찬>의 주인공 바베트(스테판 오드랑) 프랑스 파리의 유명 식당 요리사였지만 도시를 떠나야 할 상황에 처한다. 바베트 덴마크의 궁벽한 시골 마을로 도망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바베트는 겨우 목사관 요리사로 일자리를 얻는다. 말이 요리사지 먹고 자는 대가로 요리부터 허드렛일까지 하는 처지다. 이 영화의 절정은 1만 프랑의 복권에 당첨된 바베트가 당첨금을 전부 쏟아 부어 진귀한 식재료를 들여오는 장면부터이다. 금욕적인 생활을 종교적 신념으로 실천하던 마을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바베트는 호화로운 요리들로 가득 찬 식탁을 마련하고 마을 사람들을 전부 초대한다. 반목과 오해로 금이 간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점차 봉합되어 간다.

바베트가 마련한 만찬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자신들의 작은 세계에 갇혀 있던 완고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차원을 선물한 것이다.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에게 고향의 음식은 소박하지만 깊은 위로가 되고, 좁은 세상만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화려한 만찬은 더 넓고 큰 세상을 보여주는 통로가 된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