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NXT)의 점유율 잠식이 예상보다 빠르고 큰 폭으로 전개되면서 한국거래소(KRX)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7월 한달 간 넥스트레이드의 거래대금 규모는 한국거래소의 절반에 육박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우선적 대응 전략은 거래시간 대폭 확대다.
▲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한국거래소 거래시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정 이사장이 9일 부산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열린 야간 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환영사를 하는 모습. <한국거래소> |
넥스트레이드와 마찬가지로 거래시간을 12시간까지 늘리겠단 것이다.
하지만 근무시간 확대를 두고 내부 반발이 일고 있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거래시간을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모두 12시간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거래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모두 6시간30분이다.
한국거래소의 계획이 현실화되면 9년 만에 거래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현행 6시간30분 거래 체계는 2016년 8월 정규거래시간을 기존 오후 3시에서 3시30분으로 확대하며 시작됐다.
다만 일부 임직원들이 근무시간 확대에 반대하고 있어
정은보 이사장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 노조(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한국거래소 지부)는 22일부터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에 근조 현수막을 걸고 경영진을 향해 강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노조 측은 현수막에 “협의 없는 독단적 거래시간 연장”이라며 “증권업계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운명했다”고 지적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노조 쪽에서는 근무조건 변경과 관련해 우려를 표한 것”이라며 “거래시간이 늘어나면 아무래도 근무시간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규거래시간이 늘어나면 기존 직원들의 교대 근무도 불가피해 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거래소는 최근 야간 파생시장을 개장한 뒤 관련 직원들을 3교대 근무에 투입하고 있다.
이미 12시간 체제를 도입한 넥스트레이드도 교대근무 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넥스트레이드 관계자는 “정확히 몇 교대로 돌아가는지는 밝히기 곤란하다”면서도 “일찍 근무하는 조, 늦게 퇴근하는 조 등으로 나눠 교대 근무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파생시장은 24시간 돌아가는 곳이고, 정규거래는 (늘어나도) 12시간 밖에 되지 않아 교대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할 것”이라며 “채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늘어날 인력 수요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에 걸린 근조 현수막. <비즈니스포스트> |
거래시간 확장을 추진하는 프리마켓(오전 8시~9시)과 애프터마켓(오후 3시30분~8시) 시간대는 현재 넥스트레이드가 독점하고 있다.
최근 한국거래소가 넥스트레이드에 점유율을 내주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정 이사장이 해당 시간대 진출을 꾀하는 것으로 읽힌다.
넥스트레이드는 3월 출범당시 10개뿐이던 거래종목이 현재 약 800개 수준으로 확대됐고, 7월 들어 외국인 투자 비중이 10%를 돌파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점유율과 거래대금 역시 크게 늘어났다.
넥스트레이드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7월1~24일 넥스트레이드 일평균 거래량은 2억4980만 주, 일평균 거래대금은 8조8516억 원을 기록했다.
한국거래소 통계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한국거래소 일평균 거래량은 14억8966만 주, 일평균 거래대금은 19조97억 원이다.
7월 한달 동안 넥스트레이드의 거래량 비중이 한국거래소의 16.8%, 거래대금 비중은 46.6%에 달한 것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대체거래소는 6개월 평균 거래량이 같은 기간 한국거래소 거래량의 15%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전체거래가 중단된다.
개별종목에도 개별 종목은 같은 방식으로 거래량 제한인 30%를 넘어설 경우 해당 종목 거래가 제한된다.
최근에는 당국의 거래량 규제 완화 가능성이 언급되며 거래소의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넥스트레이드가 3월 출범한 만큼 6개월이 지난 9월부터 거래량 초과 여부를 살펴볼 것으로 예상됐으나, 최근 금융위원회가 해당 규제 적용 유예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금융위가 ‘확정된 바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당국이 시장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가 시장 충격을 최소화 하는 방안을 택하지 않을까 싶다”며 “넥스트레이드 거래를 멈춘다거나 인허가를 취하는 등 극단적 선택을 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한국거래소가 공적기능을 전담하는 동안 넥스트레이드는 사실상 ‘무임승차’ 한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거래소가 상장이나 시장 감시 등을 맡는데 반해 넥스트레이드는 이러한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며 “당국이 규제 완화 등으로 넥스트레이드 점유율을 보다 늘려준다면, 그만큼 책임도 함께 늘어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짚었다.
한국거래소 노조 역시 근조 현수막에서 “비용 보전도 안 되는 대체거래소(ATS)의 무임승차에 거래소의 시장관리 기능은 운명했다”며 “위법행위를 저지르는 경쟁사에 침묵하는 경영진에게서 이사의 충실의무는 운명했다”고 주장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이와 관해 “금융당국의 반응을 지켜보고, 이에 맞춰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박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