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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AMD 되살린 리사 수, IBM에서 배운 것들

이재우 sinemakid222@gmail.com 2025-07-28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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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AMD 되살린 리사 수, IBM에서 배운 것들
▲ AI 반도체가 붐을 이루는 격랑의 시대, 그 중심에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방향타를 잡은 여성 리더가 있다. AMD의 대만계 미국인 CEO 리사 수다. 그녀는 AMD를 ‘경쟁을 좇는 회사’에서 ‘길을 여는 회사’로 바꿔놓았다. < AMD >
[비즈니스포스트] 침몰하는 배에 올라타는 건 미친 짓이다. 게다가 그 배의 조타수가 되겠다는 건, 바보가 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그녀는 모두가 외면하던 그 ‘무모한 키’를 잡았다.

“가장 어려운 문제를 향해 달려가라(Run towards the hardest problems).”

이 경영 철학을 가슴에 새긴 채 거센 파도를 정면으로 돌파해 나갔다. 기울던 배는 마침내 방향을 바로잡았고, 산업 전체의 물줄기까지 바꿔놓았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 한가운데서 증명해냈다.

리사 수(Lisa Su·57)의 ‘CEO 10년’ 여정을 짧게 요약해 보았다. 그녀는 AI 반도체 기업 AMD(Advanced Micro Devices)의 CEO다. AMD는 서버용 칩렛(chiplet) 기술과 GPU 경쟁력을 앞세워 엔비디아와 경쟁하는 AI 시장의 선도 기업이다.  

생소할 수도 있는 이름, 리사 수. 그러나 지금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그녀는 엔비디아를 이끄는 젠슨 황과 마찬가지로 대만계 출신 미국인 CEO다. 젠슨 황은 1963년 타이베이에서, 리사 수는 1969년 타이난에서 태어났다. 둘 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했다.

심지어 둘은 친척 관계다. 리사 수는 “젠슨 황과 먼 친척(distant relatives)”이라고 밝혔다. 대만의 진 우(Jean Wu)라는 기업 연구자에 따르면, 리사 수 외할아버지의 여동생이 젠슨 황의 어머니라고 한다. 한국식 촌수로 따지면 리사 수와 젠슨 황은 5촌쯤 된다. 

더 흥미로운 점은 대만계인 두 인물이 나란히 미국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대표 주자라는 사실이다.

리사 수는 전략과 실행, 리더십에서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보기 드문 여걸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24년 그런 그녀를 ‘올해의 CEO(CEO of the Year)’로 선정했다. AMD가 선도적인 CPU(중앙처리장치) 칩 제조업체이자 GPU(그래픽 처리장치) 설계 기업으로 성공한 데는 리사 수의 리더십이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다. 

극찬은 또 있다. ‘칩 워(Chip War)’의 저자이자 반도체 산업사가인 크리스 밀러는 이렇게 말했다.

“AMD는 현대 미국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반전 사례 중 하나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AMD 되살린 리사 수, IBM에서 배운 것들
▲ AMD CEO 리사 수와 초대 CEO인 제리 샌더스가 2019년 창립 50주년 행사에 함께했다. AMD 공동 설립자인 88세의 제리 샌더스는 당시 “리사 수보다 이 자리에 더 적합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리더십과 능력을 인정했다. <리사 수 X(옛 트위터)>
하버드 경영대학원도 그녀의 성공에 주목했다. 2024년 가을부터 리사 수의 AMD 회생 전략을 경영 사례로 채택해 가르치기 시작했다. 필자는 먼저 AMD라는 회사의 뿌리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AMD는 인텔과 한 뿌리에서 출발했다. 1960년대 실리콘밸리. 당시 반도체 산업의 태동을 이끌며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 개발을 선도하던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라는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의 전설적인 과학자 밥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1968년 페어차일드를 떠나 새로 설립한 회사가 인텔이다. 

이듬해인 1969년, 페어차일드의 세일즈 책임자 제리 샌더스(Jerry Sanders)는 회사를 나와 동료들과 함께 AMD를 세웠다. R&D에 강했던 인텔과 달리, AMD는 인텔을 뒤쫓는 데만 집중했다. 창업자 샌더스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인텔의 그늘에 있었다(We were in the shadow of Intel).”

2010년대 초, AMD CEO였던 로리 리드(Rory Read)는 회사를 살릴 전략가를 찾고 있었다. AMD는 절대강자 인텔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신흥강자 엔비디아에게도 추격당하고 있었다. 

구조조정 전문가 로리 리드가 당시 주목한 인물이 바로 IBM 후배 리사 수였다. MIT에서 전기공학을 전공, 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IBM에서 12년 동안 반도체 공정 혁신을 주도해온 그녀였다. 

2014년, 로리 리드는 리사 수에게 표류하는 배의 운명을 맡겼다. CEO가 바뀌긴 했지만 상황은 혹독했다. AMD의 주가는 2달러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시장에선 파산설까지 나돌았다. 당시 한 전직 임원은 그 시기를 이렇게 기억했다.

“죽음보다 더한 절망(deader than dead)이었다.”

새로운 조타수 리사 수에겐 과감한 전략 전환이 필요했다. 인텔을 쫓기보다, AMD만의 강점을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새로운 칩 아키텍처인 젠(Zen)과 칩렛(chiplet) 기술에 올인했다. 

설명을 좀 붙이자. 젠은 더 적은 전력으로 더 많은 연산을 해내는 CPU 아키텍처로, AMD의 반격을 가능케 한 비장의 무기다. 칩렛은 반도체를 연산, 저장 등 기능별로 쪼개 제작한 뒤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비유하자면 레고 블록과 같다. AMD는 칩렛 개념을 가장 먼저 도입해 CPU 경쟁에서 앞서 나갔다.

이런 혁신 기술이 가능했던 건, 리사 수가 가슴에 새긴 어록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를 향해 달려가라.”

사실 이 말은 리사 수가 IBM 시절 상사였던 존 켈리(John Kelly) 부사장에게 들은 인생 최고의 조언이라고 한다. 리사 수는 2024년 한 졸업식 연설에서 이 말을 다시 꺼냈다.

“어려운 문제는 당신의 한계를 시험합니다. 집중과 혁신, 끈기를 요구하죠. 하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를 선택하는 순간, 당신은 가장 빠른 성장의 길과 세상을 바꿀 가장 큰 기회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리사 수의 성공적인 전략 뒤에는 IBM의 전설적인 회장 루 거스너(Lou Gerstner)의 영향도 있었다. 리사 수는 IBM 시절 거스너의 기술 보좌관으로 1년간 일한 적이 있다. 

1993년, 거스너가 IBM 최초의 외부 영입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하드웨어에만 집중하던 IBM은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덩치만 큰 ‘늙은 코끼리’로 전락한 상태였다.

거스너는 컴퓨팅 분야 비전문가였지만 그 덕에 전체를 시스템 관점에서 조망하는 눈을 갖고 있었다. 그런 거스너가 IBM 재편을 위해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이 ‘엔드 투 엔드(End-to-End)’ 전략이었다. 한마디로 하드웨어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솔루션을 파는 회사로 사고를 대전환하자는 것이었다.

IBM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통합해 고객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 솔루션을 제공하면서 새롭게 태어났다. 서비스 부문이 전체 이익의 절반 이상 차지하는 체질 개선에 성공했고, ‘늙은 코끼리’는 다시 춤을 추었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AMD 되살린 리사 수, IBM에서 배운 것들
▲ 1969년 대만에서 태어난 리사 수는 세 살 때 아버지의 대학원 진학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1986년 MIT에 입학해 전기공학을 전공,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IBM에서 일하면서 12년 동안 반도체용 구리 배선 개발을 주도했다. 2012년 AMD에 합류해 2014년 CEO에 오른 뒤 지난 10년 동안 AMD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 AMD >
수치로 보자면, 거스너 체제 9년 동안 IBM의 시가총액은 거의 여섯 배 늘어났다고 한다. 거스너는 훗날 자신의 경영 경험을 담은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Who Says Elephants Can’t Dance?)’라는 회고록을 펴내기도 했다. 

IBM의 그런 극적인 회생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목격했던 리사 수였다. 필자의 추측이긴 하지만, 그녀는 거스너의 ‘엔드 투 엔드(End-to-End)’ 전략을 AMD에 접목한 것으로 보인다. 

리사 수는 AMD의 차별화로 최고의 프로세서를 조합하는, 즉 CPU와 GPU를 결합하는 아이디어를 들고 있다. 그녀는 CPU와 GPU를 비롯해 데이터센터·게임기·AI 반도체 설계까지, 나누어져 있던 기술 자산을 하나로 묶어내고 있다. 그녀는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엔드 투 엔드 AI 리더(End-to-End AI leader)’가 되는 것입니다.”

한때 2류 회사로 불리던 AMD는 리사 수의 리더십 아래 기록적인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CEO에 오른 지 9년 만에 AMD의 주가는 무려 30배나 상승했다

2022년 시가총액은 처음으로 인텔을 넘어섰다. 이 소식을 들은 AMD의 창업자 제리 샌더스(88)는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I was delirious).” (포브스 인용)

돌이켜보면, 1993년의 IBM과 2014년의 AMD는 묘하게 닮았다. △외부 영입 CEO △최악의 실적 △극적인 회생까지. 두 회사는 20년 시차를 둔 ‘평행이론’처럼 보였다. 

올해 6월 AMD는 야심작 ‘헬리오스(Helios)’를 공개했다. ‘헬리오스’는 차세대 서버용 AI 가속 플랫폼으로, 엔비디아와 직접 경쟁할 전략 무기다.

리사 수의 지난 10년 여정을 복기해 보면, 그녀는 침몰하는 배에서 결코 도망가지 않았다. ‘배의 침몰 원인이 뭘까?’라는 가장 어려운 문제를 향해 달려간 그 발걸음이 AMD의 미래를 다시 썼다. 칼럼을 마무리하면서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필자는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어떤 문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이재우 재팬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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